대리눈물
대리눈물
한 남자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의 아버지는 머스마는 울면 안됀다며 참는 법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아이는 이해 할 수가 없다. 왜 남자는 속으로 울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아이는 우는 법을 잊어버린다.
어렸을 때, 내 별명은 울보였다. 남자아이에게 그렇게 엄했던 속울음에 대해서도 어른들은 여자아이인 내겐 관대했다. 그 시절 멜로영화가 유행해서 동네 어른들이 단체로 영화를 보러가곤 했다. 특별한 취미나 오락이 없던 어른들의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인영화였지만, 꼬마인 내가 따라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성우, 고은정의 목소리는 왜 그렇게 구슬펐는지. 나는 그때 짧은 노란 치마를 입었던 기억이 난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참다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짧은 치마로 눈물을 닦았다. 왜 그렇게 슬픈지. 어른들이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았다. '이 쬐그만 것이 몰 안다고 울어.' 어른들은 하나 둘 내게 관심을 가졌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화면 가득한 눈물을 외면하며 나를 놀리던 아주머니의 눈에도 빠르게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일종의 거래였다. 어른대신 울어주는 대가로 어린 내게 성인영화를 보게 해주던 일종의 묵시적 거래였다.
나는 이제 한 남자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 아이는 엄마를 닮아 울음이 많다. 내 아이의 아버지는 어김없이 내 어린 시절의 어른처럼 남자아이의 울음을 막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가 울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자로 자라기 위해서 선천적인 많은 것을 포기하며 성장하고, 애써 강한 척하다 이제는 무감동의 어른이 되기보다는, 조금은 주책이더라도 타인을 위해서 기꺼이 울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길 내 아들에 갖는 바람이다.
요즘 들어 눈이 뻑뻑해서 안과에 갔다. 의사는 '안구건조증'이라는 접속의 여주인공 전도연과 같은 병명이란다. 눈물이 말라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안구건조증. 참으로 사는 것은 아니러니하다. 늘 주체할 수 없이 내 이성보다도 더 빠르게 나를 배반하고, 언어보다 더 빠르게 흘러내리던 그 눈물의 결정이 아주 말라버렸다. 인공의 눈물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나는 안약을 넣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눈물을 흘리는 울음을 울 수 없다. 내 아이가 나 대신 울어줄 때 나는 메마른 감정으로 쳐다보고 있을뿐이다. 울 수 있는 가슴도 메말랐다. 언제부터 생긴 병인지.
내 가슴속의 안약은 누구에게 조제를 받아야 하는지 의사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