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길 중 가장 짧은 파도길(3코스)
해변길 중 가장 짧은 파도길(3코스)(2014. 6. 6)
아들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한달에 한번씩 가족에게 봉사(?)라는 강요 무기로 아들을 의무적으로 산에 데리고 다닌다. 이번에는 태안둘레길 중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난이도는 제일 쉬운 곳으로 선택하다보니 파도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남편의 흑심은 자신이 만든 목재 카약을 물에 띄우고 싶은 딴 생각이 있었지만, 서로 각자의 여행 컨셉으로 새벽 2시에 떠났다. 연휴라 차가 막힐 것 같아 떠나려는데 뚜뚜가 눈에 밟힌다. 뚜뚜는 13년된 우리 강아지 이름이다. 내가 태안 해변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코스도 짧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산, 물론 구릉정도이지만 굽이굽이 산길을 가다보면 방풍림의 소나무가 바람가는데로 그렇게 휘어 있으면서 그 나무사이에 펼쳐지는 파란 바다, 그러다 계속되는 파노라마 처럼 파도가 펼쳐지고 또 하나의 해변을 지나가려면 구릉과 조용한 마을 어귀를 만나면 겁 많은 개들의 합창소리, 그러다 또 다른 해변을 만난다. 가끔씩 저수지와 캠핑촌을 만나기도 하면서 지루할 사이 없이 그런 삽화가 반복된다. 이제 태안 둘레길 3번째 길을 걷기 시작하자.
파도길(8.7km, 소요시간 2시간 30분)
만리포(사랑노래비) ⇒서울대학교⇒송도호텔⇒모항항⇒행금이쉼터⇒모항저수지 ⇒어든돌고개마을⇒ 어은돌마을⇒ 파도리해변⇒ 파도리정류장
2007년12월 태안 유조선충돌사고로 온국민이 힘을 다해 기름을 닦아내고 극복하는 현장사진첩으로
상징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다시는 잊지 말자고... 하지만 그 후에 얼마나 많은 더 큰 사건이 기억을 덮었는지 너무 까마득하다. 나도 그때 남편과 와서 돌을 닦아내었다. 그때는 답이 없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마을 어귀에 붙여진 현수막에 (고맙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그 글에 막막하고 눈가가 뿌여졌는데, 지금, 그때의 사진을 보니 비닐 우비를 입고 기름을 닦아내는 우리의 과거모습이 아득하다. 눈에 펼쳐져 있는 태안의 바다는 그 기억을 잊게 한다.
만리포 사랑비
이곳이 파도길의 시작이다.
만리포해변 8.7Km를 알리는 이정표.
심플한 펜션이 보인다.
해변을 걷다 햇빛이 강해질 무렵 산 숲길을 만난다.
행금이 쉼터 가는 길
화살표 방향을 잘 보아야 한다. 갑자기 뜬금없이 골목사이에 가는 길이 숨어있다.
말의 어원은 늘 신기하다.
모항저수지
빼옥한 연꽃이 아름답기보다는 무섭다. 그 질긴 생명력
물을 삼켜버린 그 저수지에서 남자가 낚시를 하고있다. 낚시를 던질 틈이 없을 텐데 신기하다.
어은돌 해변
이제, 파도리 해변
이 코스의 마지막 해변이다. 저 멀리 어운돌의 등대가 보인다.
동네 어귀에 피어있는 꽃, 색깔이 너무 곱다. 우리 엄마의 한복 빛깔이다.
이번 여행은 처음 태안의 노을길을 시작으로 바라길, 솔모래길, 네번째 걷는 여행이다.
해변길, 나름 특색이 있다. 해변길은 다른 둘레길과의 차이점은 무리없이 걸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
바다를 전망하며 걷는다는 큰 컨셉과 둘레길 이름 특색처럼 나름 다름이 있다.
파도길은 해변길 중 가장 짧고 단조롭다. 난이도 면에서 '하'정도이다. 걷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에게는 싱거울 것이다. 어느 정도 걷다 보면 끝나있다.
그래도 갖추어야 할 것은 다 갖추어져 있다. 만리포의 해변에서 시작하다 어느덧 산길을 만난다. 이른 아침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동네 주민을 만난 것을 빼곤 거의 사람을 만나기 힘들었다. 그전에 3번의 코스 해변길은 거의 혼자 걸었지만, 이번에는 아들이 있어 좋았다. 아들은 이 둘레길도 힘들어 버거워 했지만,
모항저수지에 보였던 연꽃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빼옥히 저수지의 물빛을 점령한 연꽃, 아들은 전쟁터에 버려진 시체처럼 그런 음산한 기운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다 만난 어운돌 동네에서 만났던 양귀비 꽃, 호박 꽃, 깻잎, 상추 그런 기본적인 이름도 모르는 아들에게 자연을 알려주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주 어릴때 외가집에 가서 보았던 풍경이 아직 저 깊은 곳에 겹겹이 쌓여 있는데......
어운돌 해변에서 벤치에 앉아 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바람 한 줄기가 우리의 이야기를 엿듣는다. 행복한 풍경이다. 이제 나는 점점 현역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다. 내 또다른 미래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만 두면 1년간은 제주도 올레길, 태안의 해변길을 완주하고 워밍을 한 후 산티아고의 칠레길에 갈 것이다. 잘 살았니? 내 자신에게 물어보고, 그래 수고했다고.... 나를 위로하고 이제 또 다른 내 삶의 이야기를 펼쳐낼 것이다. 이제 베이붐세대의 막내 뻘인 내 세대가 그렇게 지고 있다. 열심히 앞만 보고 우리는 달려왔지만 바톤을 넘겨 받은 우리 아들세대는 너무나 느긋하다. 조바심이 나지만 우리는 이제 퇴장할시간이다. 지켜 볼 수 밖에 없다.
다음 번 여행에서 태안은 또 어떤 행복을 알려 줄까?
이제 3번 남은 해변길, 벌써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