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

내가 사는 곳 여기저기 살펴보기1탄 (파주용미리 석불입상)

뚜뚜가디 2008. 6. 7. 17:03

 보물93호 로 지정된 파주용미기 석불입상

거대한 천연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는데, 머리 위에는 돌갓을 얹어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굉장히 거대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점에서 불성(佛性)보다는 세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는 지방화된 불상이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손은 가슴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4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이 다를 뿐 신체조각은 왼쪽 불상과 같다.

지방민의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女像)이라 한다.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었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을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 오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불상들은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탄생설화가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된다.

 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8 에 위치한 용미리 석불입상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괴기스럽다.  스물스물 무엇인가 올라와 나를 감싸는 그런 기운을 들게  했다. 

우선, 거대한 큰키로 내려다 보는 모습이 처음 기싸움에서 나를 압도했다. 하지만 조금 더 서서 자세히 보면 거대한 암벽에 그려진 세밀하지 않은  굵은 음각선으로 그려진 옷태, 오히려 촌부의 둔탁한 손은 토속적인 거대한 토우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면 나의 지나친 상상일가?  남녀가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내려다 보는 모습이 해학적이었다. 나 어렸을때 솜을 넣어 엄마가 만들어준 헝겁인형은 싸인펜으로 그려진 가는 눈썹과 눈을 가진 인형이 있었다. 왜 지금 이렇게 큰 석불앞에 어릴 때 갖고 놀던 작은 인형이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덩치 큰 석불입상은 유명한 사찰에 가면 언제나 잘 정제된 모습으로 정갈하게 앉아 있던 불상의 그 섬세함과 경건함으로 숨막혔던 그런 분위기와  다른 그런 편안함을 내게 느끼게 한다.

내가 일산에 와서 산지도 거의 15년이 되어간다. 이곳에 거주하면서 이 일산에서 살았던 선인들의 뿌리와 행간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되새겨보면 거의 전무하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차근차근 살펴보고 정리를 해야겠다.

2008.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