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과 동행한 소리여행, 음식과 함께한 북큐슈여행
2012년, 올해도 변함없이 새로운 마음으로 계획을 세웠다. 여러 번 번번이 휴지조각처럼 되어 버린 과거를 기억하는 나는, 올해는 비교적 쉽게 이룰 수 있는 계획을 세웠다.
몇 년 전 정동진에서 새해를 맞았다. 사납고 매서운 바람으로 배웅하는 겨울동해 바다에서 우리가족은 오랫동안 추위에 떨었다. 긴 기다림 뒤에 쌀쌀한 아가씨처럼 잠시 우리에게 얼굴만 살짝 내민 해는 꽁꽁 얼은 볼과 손을 더 초라하게 했다. 아들은 이번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다. 이제부터 피할 수 없는 공부와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게다가 남자아이는 가족여행보다 친구와 여행을 더 선호한다. 이제 가족여행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들 세대는 어수선하다. 학생폭력이 계속 연이어 신문지상 톱으로 올라온다. 가슴이 꽉 막혀온다. 아들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누구나 내 아이는 예외일거라 생각하지만, 모르겠다. 꼭 내 아이가 가해자이며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 조금은 길고 느린 여행을 하는 동안 조심스럽게 아들의 심상을 열어 볼 생각이다. 여행지는 한국보다는 따스해야 하고 또 경제적으로 비용도 절약해야 하는 두 가지 장점을 가진 큐슈로 낙점 지었다.
큐슈 3박4일, 자유여행이다. 내가 짜 논 3박4일 여행 포인트는 느린 일정과 미식가인 아들을 위해 먹는 것에 중요성을 두었다. 내 여행일정을 보고 남편은 한마디 한다, “엄마표 패키지여행이네.”
【북큐슈 엄마표 패키지 여행 일정】
날짜 |
운송 수단 |
일 정 |
기타 |
1.7(토) tw293 |
14:50 16:10 |
◬인천공항 ◬후쿠오카공항:국제선터미널1층 공항 무료셔틀이용 하카타역(열차 탑승 성인기준 250엔) 북큐슈레일패스교환(유후인,하우스텐보스 예약) 후쿠오카타워, 모모치해변, 나카스, 캐널시티 ♥저녁(스시온도) |
숙소:더 비하카타 JR하카타역,치사구치(출구)요도바시 카메라 건물 대각선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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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
9:20- 11:28
17:07-19:17 |
◬유후인(유후인노모리도) ♥점심(오쇼큐지도로코넨린에서 하나가고벤토) 긴린코호수, 유후인 민예촌 ♥ 저녁(나가사키 야타이) |
유후인노모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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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월) |
8:34-10:18 16:48-18:34 20:21-22:17 |
◬하우스텐보스 (테디베어 하우스-캐널쿠루즈-톰두른-대항해 체험관-팰리스하우스텐보스-오렌지광장 불꽃놀이레이저쇼 관람) ♥점심 모스햄버거 ◬나가사키 (그라바엔-오루라성당-오란다자카-신지차이나타운-원폭박물관(전차 1일 패스) ♥저녁 나가사키 짬뽕 |
하우스텐보스 시사이드라이너 |
1.10(화) TW292 |
12:25- 13:45 |
◬하카타지역 관람 하카타교통센터 4층(100엔 숍) ◬하카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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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토요일 - 회전초밥】
남편과 아들 좌우로 호위(?)받으며 인천공항으로 갔다. 저가 항공 티웨이 는 출국신고를 하고 셔틀버스로 이동해 출국게이트로 갔다. 티웨이 기내 식사는 대부분 기대 말라고 한다. 먼저 간단하게 빵을 먹었다. 티웨이 후쿠오카항공은 오픈해서 얼마 안 되어 좌석이 많이 비었다. 기내식은 역시 예상대로 빵과 작은 컵에 들어 있는 오렌지 주스로 소박(?)했다. 비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일본 후쿠오카에 도착했다는 안내멘트가 나온다.
후쿠오카 국제공항에서 10분간 셔틀버스(무료)를 타고 국내선 항공에 도착했다. 공항철도자동판매기에서 현지인처럼 능숙하게 1,000엔을 놓고 3명의 표를 끊었다. 여기까지 매끄럽다. 그럼, 내 해외여행경력이 벌써 15년차다. 하카타역 미도리노 마도구찌에서 북큐슈레일 3일 교환권으로 북큐슈레일패스를 받았다. 미리 지정석을 한문으로 써 논 포스트잇을 보여주고 하우스텐보스와 유후인 표를 받았다. 일본학과 학생이면서 일본어를 못하는 코미디, 난 일본어 학과가 아니고 일본학과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남편은 전직 항해사 출신답게 우리가 묵을 호텔을 쉽게 찾았다. 「The b 하카다」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호텔은 작았지만, 깔끔했다. 여행가방을 룸에 놓고 간단한 가방만 들고 호텔을 나왔다. 하카타역 광장은 어둠속에서 크리마스트리가 화려하게 반짝인다. 우리는 사진을 몇 장 찍고 100엔 버스를 탔다.
100엔버스 시간표(친절하게 한국어로 안내되어 있음)
해외여행에서 제일 익숙하기 어려운 것은 버스다. 버스는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만원버스다. 젊은이들과 관광객을 태운 버스는 천천히 이동하며 버스정류장 마다 사람을 계속 태운다. 한국 관광객이 이곳을 많이 오는 지 캐널시티나 텐진에 어눌한 한국어 안내방송을 한다. 우리는 텐진에서 내렸다. 저녁을 먹으려 회전초밥집 주소를 확인하니 텐진지역이 아니고 호텔근처인 요도바시 하카타 4층에 있다. 이곳까지 왔으니 야타이가 있는 나카스까지 산책하기로 했다. 지도 전문가(?)인 남편을 따라 텐진거리를 구경하며 걸었다. 아들은 감정에 젖어 “엄마, 비 오면 좋겠다” 외친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빗소리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음악 듣는 귀가 밝다. 여행할 때 만나는 비는 사람의 감성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 그래, 나도 비가 왔으면 좋겠다. 텐진에 상점은 어떻게 저런 공간으로 가게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할 정도로 자투리 공간을 이용한 가게가 많다. .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화려한 나카스의 포장마차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반대로 돌아가려니 또 다른 저질체력의 아들이 힘들어 한다. 그래, 오늘 마지막 여행은 하카다에서 스시를 먹자. 긴 텐진 지하도를 걸었다. 일본은 우리보다 상가가 일찍 폐점하는지 곳곳에 상점이 닫혔다. 하카타역, 한 접시에 105엔 하는 스시온도라는 이름을 가진 회전초밥집에 들어갔다. 나는 음료로 맥주 한 잔을 시켰는데 500엔, 만만치 않다. 힘들어 하던 아들은 초밥집에 가니 눈이 반짝인다.
요도바시에 있는 스시온도초밥집(1접시에 105엔)
그래, 이번 여행은 아들을 위한 음식여행이다. 수북하게 쌓인 접시, 그래도 3,000엔이 안된다. 아들은 만족했는지 입가에 행복한 얼굴이다. 단순한 녀석. 그래, 오늘 여행은 이것으로 끝났다. 나도 피로가 몰려온다. 호텔은 아담하고 깔끔했다
하카타 역 크리스마스트리
텐진거리에 본 음식점:우리나라 꼬치
【1월 8일 일요일- 하나고가벤토, 돈코츠라멘 】
알람시계를 6시에 맞추었지만, 의심이 많은 나는 5시도 안되어 5분 간격으로 계속 깼다. 호텔 아침식사에 대한 인색한 댓글 때문인지 상상한 것 보다 먹을 만하다. 아니면, 워낙 저렴한 여행 전문이다 보니 『낫 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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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아침식사 |
나는 매뉴얼화 된 인간이다. 어떤 일을 계획하면 매뉴얼을 만든다. 타인에게 잘 묻지 못하는 소심형이다. 그래서 계획대로 안 될 때를 대비해 또 다른 두 가지 유형의 매뉴얼을 만들어 둔다. 순발력은 빠르지 않지만 성실형이다. 이런 면은 오랫동안 공무원 직업군에 길들여진 습관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일본과 어떤 면은 코드가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어려운 여행이 될 것 같다.
늦은 점심이 될 것 같아 열차서 먹으려고 모스버거를 샀다. 데리야끼와 해물로 된 버거다. 이 버거도 이번 음식 여행 일정에 들어있다. 지정석이 마감되어 12시 이후 자유석표로 유후인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 차창밖에 보는 일본의 농촌풍경은 정갈하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많이 닮아있다. 장대처럼 키가 큰 나무들과 차분한 일본가옥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우리나라 농촌의 원색 지붕 페인트 색은 조급함을 드러낸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기다림을 우리는 배우지 못했다. 그건, 우리가 지금 위치에 있게 한 원동력이지만, 슬픔이기도 하다. 우리가 탄 특급열차는 역마다 정차한다. 우리 특급과 개념이 다르다.
유후인 열차
열차에서 바라본 작은 역 풍경
유후인에 도착했다. 유후인노모리도 지정석을 예약하려 줄을 서는데 앞에 여자가 나를 툭 친다. 뒤를 돌아보니 나를 친 것조차 의식 못한다. 무례하고 거침없는 것을 보니 한국 사람이다.
유후인역에서 나오자 눈 덮인 유후다케가 거리 끝나는 곳에 장엄하게 우리를 지켜본다. 유후인은 작지만 천박하지 않게 손님을 맞는 정결한 자세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이곳이 생각날 거다. 아기자기하고 부드러운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내지만 수다스럽지 않은 정겨움이 있다.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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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문득 눈 덮인 산을 보다 기침처럼 호리병 속에 나온 유휴인이 나를 불러 세울지도 모른다. 긴린코로 가는 길은 사람들이 붐볐다.
아들을 위한 두 번째 음식여행, 아들에게 여행책자에 나와 있는 사진처럼 푸짐한 하나가고벤토를 먹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가이드북이 구버전 인지 몇 번을 찾아봐도 그 음식점이 없다.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어 지도에 표시된 지점의 음식점에 들어가니 우리가 찾던 곳이다. 하나가고벤토와 오므라이스와 닭요리를 주문했다. 하나가고벤토는 사진이 미화해 준 예술일 뿐 먹을 것은 없었다. 한국처럼 푸짐하고 손맛이 나는 그런 음식은 아니었다. 아마, 이곳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고 밍밍하다. 음식 맛은 일본사람을 닮았다. 우리가 한국 음식과 닮은 것처럼. 아들을 위한 음식여행은 거의 빠짐없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기대했던 맛은 아니지만 여행은 항상 기대와 다름이 만나는 것이다. 다시, 긴린코를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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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고벤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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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지는 아름다운 커피숍, 가게들이 우리의 걸음을 자꾸 멈추게 한다. 긴린코에 도착했다. 호수는 우리가 상상한 것 보다는 작다. 그래서 더 일본적이다. 긴린코에서 누군가 여유롭게 낚시를 하고 있다. 남편의 행동이 갑자기 민첩해지더니 무엇이 잡히는 지 확인하러 갔다. 브래드피트의영화 『흐르는 강물처럼』같이 서정적이다. 샤갈미술관은 호수에 위치했다. 우리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샤갈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린다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인파를 피해 긴린코 뒷길로 천천히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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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인력거맨이 일본 전통 복장을 하고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그냥 인력거가 아니다. 문화를 설명하는 해설가인 동시에 더불어 전통을 계승한다. 부럽다. 천천히 걸으면서 아들에게 이번 여행이 어떠냐 물었다. “이곳은 오카리나와 어울려요.” 아들은 작곡을 하고 싶어 한다. 지금 여행은 엄마표 패키지지만 시간이 흘러 불현듯 어느 한 장면이 차용되어 음악으로 창조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은 그냥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후에 어떤 기억은 다른 삽화와 증식된다. 그리고 세상에서 힘이 들 때 항상 무조건 내편인 누가 있다는 것, 내가 느낀 유후다께처럼 아들에게 기댈 수 있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기차 안에서 먹으려고 금상을 받았다는 치즈가 들어있는 크로켓을 샀다. 아들은 일본에서 사케의 맛을 알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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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음식여행은 돈코츠라멘이다. 돼지기름이 떠 있는 일본식 라멘을 도저히 먹을 수 없어 국물만 조금 먹고 맥주 한잔으로 입가심을 했다. 아들은 미식가처럼 국물을 음미하며 맛있게 먹는다. 호텔에 오니 라멘이 잘못되었는지 아들은 몸이 가려워 어쩔 줄 모른다. 남편은 다행히 약을 구해왔다. 남편은 이곳사람들 영어 발음이 약국을 “드러그스토아”라고 발음한다며 웃었다. 약을 먹은 아들은 가려움증이 사라졌는지 핸드폰으로 편안하게 음악을 듣는다. 내일 아들에게 누룽지를 먹어야겠다. 남편이 사온 사케를 아들이 한 모금 마시더니 인상을 쓴다. 나도 먹어보니 내 입맛도 아니다. 참, 술맛도 일본사람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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