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파리가 나의 마음을 훔치다 1탄

뚜뚜가디 2013. 2. 10. 18:31

 

 

파리가 나의 마음을 훔친다-1탄

 

개선문→상제리제거리→몽마르뜨언덕→루브르박물관→노트르담성당→세느강유람선→에펠탑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간다. 야간열차다. 

고등학교때 영화 야간 열차를 보고 그 이름에 낭만과 환상을 갖은 적이 있었다.

무작정 영등포에서 부산행 야간 완행열차를 탔다. 그때가 내 첫 혼자여행이었다.

겁이 유난히 많던 내개는참 벅찬 경험이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여행도 한번 해보지 못했던 초자가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탄 열차는

낭만과 거리가 먼 시끄럽고 소란스럽던 광란의 열차였다.

군대 가는 친구를 떠나 보내는 젊은이들의 일탈과 술취한 사람들의 소란함.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내 꿈으로 간직한 낭만은 해체당하고

꼿꼿하게 8시간을 푸른 융 좌석에 세사람이 끼어 앉아

열차 내에서 피어대던 담배연기, 술냄새 그속에 숨도 못쉬고 그렇게  시간을 세며 앉아 있었다.

꿈은 간직할 때 아름답고, 현실을 다르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아름답다.

 

 

 

   
 기차안에서 셀카로 한장, 고독한 모습으로  프랑스 열차 내부, 화장실 유료, 잔돈을 찾느라고 한참 헤맸다.

 

 

멋쟁이 할머니와 찰칵

 나도 파리지앤 할머니처럼 스커트에 롱부츠가 어울리는... 이렇게 늙고 싶다.

 

 

 

 

 

 나는 유럽의 야간열차의 창밖 풍경에 감탄해했었는데

어느새 수면의 세계를 헤매다 보니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의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kyriad hotel

프랑스호텔, 작지만 호텔내에 포트가 준비되어있다.

 이곳에서는 작은 것에도 행복해한다.

 

 

 

 

 

오키아, 드디어 개선문이다.

 

파리의 개선문

1806년 나폴레옹의 명으로 장 샬그랭과 장 아르망 레몽이 설계했고, 나폴레옹이 죽은 후인 1836년에야 완성되었다. 이 개선문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는데, 그 높이와 너비는 2배 크기이다. 프랑수아 뤼드가 전면에 조각으로 장식해놓은 '1792년 용사들의 출정'(일명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이 유명하다. 개선문의 안쪽 벽에는 각 전투에 참가했던 600여 명의 장군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안의 자그마한 미술실에는 개선문의 역사를 말해주는 그림·사진·모형 들이 진열되어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면 앞으로는 콩코르드 광장·루브르 궁이 보이고, 뒤로는 라 데팡스가 보인다. 개선문의 바닥에는 무명 용사묘가 설치되어 '영원한 불길'이 언제나 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개선문이 각인된 것은 구조물이 아닌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파리를 무대로 불안과 절망에 사로잡힌 망명자들의 삶을 묘사하였다. 나치스에게 쫓겨 파리로 망명한 주인공 라비크는 유능한 산부인과 의사로 따뜻한 인간성과 예리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러나 여권도 신분증도 없이 프랑스인 외과 의사 대신 위법으로 수술을 해주면서 불안하고 허무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생활 가운데 여배우 조안과의 사랑, 독일 강제수용소에서의 원수 하이케에 대한 복수 등이 그려져 있으며, 결국 독·프전쟁이 시작되고 라비크는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호송된다는 내용이다. 

차갑고 지성적인 남자주인공 라비크는 한때 내 이상형이었다.  

 

  개선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 하지만 한쪽은 패배자가 있었을 것이다.

승리의 전리품, 역사는 이긴자들의 노래이다

 우리 나라 남대문이 생각난다.

남대문 화재시 거의 생방송으로 중계되었을때 설마 했었는데 소

망과는 다르게 허망하게 무너졌다.

불의 화신 해태도 아무 소용이 없었

 

무명 용사의 묘

 '영원한 불길'이 언제나 타오르고 있다

 

개선문에서 기분이 엎되어 포즈를 취한다.

내 팔뒤로 파리가 펼쳐진다.

 

상제리제 거리 동영상

 

 

몽마르트르 언덕 주변

'순교자의 언덕' Mont des martyrs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몽마르트르는 해발 130m의 나지막한 언덕이다. 한때 예술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갈망했던 화가, 시인 등의 예술가 등이 모여들었던 곳으로, 지금도 고흐나 피카소, 위트릴로 같은 많은 예술가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파리 예술의 낭만과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또 다른 한쪽에는 카바레 물랭루즈와 수많은 술집, 클럽들이 늘어서 있어 환락가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사크레쾨르사원

흰색 외관이 이국적인 사크레쾨르 사원은 파리의 다른 성당들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른 로마 비잔틴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사크레쾨르는 성스러운 마음이라는 뜻, 1870년 보블전쟁의 패배와 파리의 코뮌으로 암담했던 사회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시책으로 카톨릭교도을 위해 세워졌다. 사원앞에 서면 파리의 시내를 감상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사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소매치기 또는 색색깔 실로 장식을 해준다며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을 불러대는 사기꾼이 많다고 한다.

수도원에 있는 벽화를 구경하다 수도원에서 파는 허브차를 한잔 마셨다. 가격은 2유로

허브의 향이 비를 타고 입안이 상괘해진다

몽마르뜨언덕에서 파리의 시내가 보인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파리를 노래한다

 

 

테르테르광장

작은 언덕이라는 뜻의 테르테르광장은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무명화가와 여행객들로 항상 붐비는 몽마르트의 명소, 작가마다 개성이 있다. 이곳에서 무명의 작가가 어느날 유명한 작가로 거듭날 지도 모른다.

무명작가의 그림앞에서 살짝

그림이 있고, 예술이 있고, 커피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간간히 비가 내린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풍이다.

강렬한 하나의 엑센트가 있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하나 사고 싶지만 그냥 구경만 했다.

 

 

 

사크레쾨르사원 성당주변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패션악세서리를 파는 노점상,

이곳에서 파는 노점상 주인들의 패션이 멋스럽다.

그냥 그 멋에 취해 마술을 걸어본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마티스의 그림처럼 빨간색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다 

 

에스카르고

식용달팽이에 백포도주, 당근, 양파를 조금 넣고 향초를 섞어서 3시간 끓인 음식 

맛은 그냥....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지 서빙하는 사람들이 한국어를 잘한다.

 

 

. 점심을 먹고 나오던 파리의 뒷골목

 

 

 

 우리나라 음식점은 대부분 선팅이 되어 있어 외부에서 음식먹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는데

이곳은 이렇게 오픈되어 있는 것이 많았다. 앞에 의자는 대기석인가?

 

프랑스 하면 나는 실존주의, 사르트르, 시몬느베이유가 생각난다. 고등학교시절에 프랑스 소설에 심취된 적이 있었다. 프랑스소설은 서사적이기 보다는 심리적인 묘사로 나의 어떤 본능을 자꾸 건드린다. 내가 갖고 있는 심리적인 저 밑바닥을 자꾸 들추어내지만, 정작 고민만 하고 있다. 해결은 없어보인다.  다시는 프랑스 소설을 읽지 않겠다고 책을 짤라버린적도 있다. 그러나 또 보게된다.

프랑스 영화도 허리우드와는 전혀 다르다. 영화 중간에 여백이 있어 좋다. 이야기 전개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삽화가 있다. 히치콕감독의 기법처럼, 감정을 이완시킨다. 하지만 일부로 관중의 시선을 옮기는 것이 아닌 그냥 물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쉼이 있다. 

 

내가 알던 직장동생이 몇년전 파리에 혼자 왔었다. 아버지에게 결혼비용을 가불 받아서

본인의 유학이 가능한 가 타진하러 왔다가 그냥 포기하고 한국에 빈손으로 돌아와서 주저앉았다.

난 그때 그녀의 목울음을 보았다

직장을 그만 두고 지금은 연락이 두절된 그녀는 이 파리에서 왜 허망하게 꿈을 포기했을까?

아마, 그녀는 몽마르트언덕에 혼자 올라와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눈물로 짠 커피를 마시고 갔을 것 갔다.

 

 뿌잉

이제 노트르담과 세느강, 에펠탑으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