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가을이 저만치 간다(2013. 11. 16)
경북 청송은 오지다. 청송하면, 사과, 교도소, 주왕산 이렇게 내게는 떠오른다. 내나이 20세 중간 그 무렵 여름, 이곳에 친구와 함께 왔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자연을 많이 접할 기회, 시간, 돈도 없었는데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오게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도 입구에서 우뚝 솓은 바위산은 이곳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만큼이나 근접하기 어려워보였다. 그러다 25년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이곳에 왔다. 둘이 아닌 혼자서.
어제까지만 해도 이곳에 올 수 있을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급한 업무로 새벽3시까지 마무리하고 이곳을 예약만 안했으면 오지 않았을 것 처럼 몸이 힘들었다. 새벽 4시에 알람을 마추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시청에 6시 30분까지 버스를 타려면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와야 한다. 새벽부터 바쁜 하루였다. 그렇게 해서 이곳에 왔다.
주왕산, 가을은 저만치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난 무대가 끝난 뒷자리가 더 마음에 든다. 화려함이 지나간 그런 텅빈 자리에 빠삭 마른 잔가지와 미처 떨어지지 않은 그 가을 빛깔의 잎새에 보이는 파란 하늘이 그래서 더 높고 좋다. 혼자오는 여행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여행사를 따라 오는 것이 좋다. 5시간 넘게 달려온 그 길에서 사념이 넘친다. 간혹 못다한 수면에 몸을 맡긴다. 주왕산에 도착하니 11시 10분이다.
용추폭포 ⇒용연폭포⇒절구폭포⇒주왕암⇒주산지
입구에서 바라다 본 주왕산
병풍처럼 사람의 방문을 거부하고 있다.
대전사 돌담 넘어 보이는 바위산, 주왕산
대전사에 있는 돌탑
이번에도 정상까지 못오르고 폭포의 언저리만 보는 것으로
아쉽다. 하지만 시간상 물리적으로 오르는 것은 힘들어 패스
용추폭포로 go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다. 잎을 떨군 나무가지가 메마르게 서있다.
물 깊이도 얇다. 산 깊은 골에는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펴는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가을이 풍덩 물에 빠졌다. 그속에 하늘이 담겨있다.
학소대, 사람의 얼굴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사연많은 전설이 궁금해진다.
용추폭포로 가는 길에는 대만의 타이거 계곡과 닮아있다
용추폭포
폭포의 수량이나 크기는 작지만,
그 폭포 주변을 둘러쌓인 바위계곡의 풍광이 더 볼만하다
용연폭포
절구폭포를 가는 길이 멋스럽다.
겨울, 눈쌓인 이곳에 다시와서
마치 내 발자국이 춤을 추는 것처럼 이길에 표시를 남기겠지.
그때 누군가를 만나면 그냥 수다스럽게 인사를 할 것 같다.
빨갛게 언 볼만큼이나 마음도 빨갛게 홍조로 물들고
절구폭포
누가 이렇게 기원을 시작했을까?
아슬한 위험속에 세워논 소망이 또 다른 소망을 부추킨다.
신화속의 신이 던진 돌인가?
주왕굴
제단위에 올려 놓은 비닐포는 갑자기 된서리를 맞는 기분이다
어느덧 하산 길, 마지막이다.
어제부터 먹은 것이 별로 없다. 막걸리 한잔에 도토리묵을 시켰는데
묵에 나물이 올라와 있다. 짜고 듣도 보지 못한 음식이다.
아, 참 이곳이 경상도지. 반도 못먹고 잔술만 한잔 들이켰다.
가슴이 싸하다. 풍경때문인지, 막걸리때문인지 모호하다
주왕산에서 주산지까지는 차로 20분정도 걸린다. 주왕산에 더 머물고 이곳은 패스하려고 했는데 오기를 잘했다. 보너스를 받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지리산의 고사목처럼 버들목이 그렇게 물과 어울려 있었다.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슬픈 이야기 가득하다. 계절이 바뀔때 마다 이곳의 변화를 보는 것 또한 관전이다. 그런데 서울과 너무 멀어 흠이긴 하지만
주산지는 일출무렵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물속의 왕버들과 물가의 나무가 수면에 반사되는 순간이 이때부터 시작되면
그때 그림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다
이곳은 화려하게 성장한 모습보다는 지금의 여백이 더 어울린다.
나만의 생각이지만
물 위로 떠오른 왕버들, 여름에는 지금의 색깔과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그래서 여름, 겨울에 한번 더 오고 싶다.
어떤때는 사각의 앵글로 보여진 절제된 모습이 눈에서 보는 것 보다 더 아름다울때가 있고
내가 보는 이 감동을 카메라 앵글이 따라오지 못할 때도 있다.
지금은 서로 보완해준다. 내가 미쳐 챙겨보지 못한 소소한 장면을 기억하고...
경북 청송은 오지다보니 한번 이곳에 오려면 여러번 망설이게 된다. 하루에 이곳을 오기에는 너무 시간이 짧다. 그래서 내게는 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어 여행하기가 수월한 면도 있다. 단풍인파가 살짝 지나가서 도로는 편안하고, 산도 조금은 조용하다. 이 축복의 시간이 참 고맙다.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다. 들판도 이제 수확이 다 되어 텅 빈 공간, 하늘만 천연덕스럽게 높고 푸르고 맑다. 이렇게 2014년도 지나가고 있다. 이런 기억이 하나의 기호로 겹겹이 쌓여있다 어떤 감정이 입력되면, 기억의 코드는 삽화처럼 그림하나를 화면에 띄우고 나를 웃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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